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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와 욕망에 가려진 아마데우스 안의 정치색Review/미디어 2017. 6. 10. 23:03반응형
정치색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 영화 아마데우스. 그러나 그 배경을 살펴보면 정치, 변화, 갈등, 혁명 등의 키워드가 산재해 있습니다.
1791년 모차르트가 요절하기 까지 그의 마지막 10년을 조명하는 영화 아마데우스.
그 사이 프랑스에선 시민혁명이 일어나고 (1789년, 극중 오스트리아 황제 요셉2세의 여동생도 유명한 마리 앙뜨와네뜨죠, 짧은 대화 속에 그녀의 안위를 걱정하고 있는 모습이 보여지죠), 귀족과 평민간의 갈등도 더욱 심화되어 서로를 자극하지 않으려 하는 분위기도 있었고, 그 태풍전야 같은 시간 대에서 기득세력은 권위와 위치를 확고히 하려는, 즉 변화를 거부하고 지금 그대로를 고수하려는 모습을 보이지요.
이를 두고 당시 유럽 사회를 단순히 '보수'적이다 라고 이야기 하기엔 너무 단편적이고 사회상에 얽힌 것들이 많으니만큼 폄하의 의미는 아니지만 기존 틀을 유지하려는 귀족들의 의지가 강한 그때 모차르트가 음악의 도시 비엔나에 나타나게 됩니다.
당시 음악계를 보면 귀족계 후원을 받으며 유명세를 날리던 작곡자 하이든이 있었고, 살리에리도 유명세를 타고 있었으며, 모차르트보다 14살 어린 유년의 베토벤도 있었고.. 직후에 슈베르트와 리스트도 나타납니다! 이 둘은 나중에 살리에리의 음악 가르침도 받게 됩니다, 모차르트의 아들도 교습을 받구요.
영화 내에서는 조용하게 넘어가는 경향이 있지만 음악계에선 바로크에서 고전파, 그리고 막 낭만파로 넘어가면서 사상적으로나 표현적으로나 복잡하게 얽히는 그 시간 대를 조명하고 있는 셈이지요 - 일부는 베토벤은 고전파라기 보단 낭만파의 시초로 보는게 옳다는 시각도 있고, 그보다 더 땡겨서 그 불씨를 놓은건 모차르트다!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구요.
비엔나를 정복하면 유럽을 정복한 거나 마찬가지였던 당시 상황에 폭풍우 같았던 그는 여러 의미로 '파괴자' 를 자처 합니다 - 상대의 이해를 바라고자 한 것이 아닌 구 관습, 이야기, 습관 등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작품관에서도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 있지요 - 예민한 시대에 정치색이 싫다며 그 모든걸 드러낸 민감한 소재의 작품을 오페라 작품으로 선택하려하는 무모함, 터부시 되던 후궁 관련 이야기를 오페라 작품화 하는 과감함, 영원을 가져다 준다며 고대 신화, 신의 이야기를 요구한 노블세력의 요구를 묵살하고 더 다양한 소재와 자유로움을 밀어 붙이던 혁신성, 노블의 하인이 되기 싫어 빈에 왔으면서도, 궁중음악가가 되고자 했으면서도 창작의 자유와 열의를 끊임없이 요구한 모차르트.
오페라를 중심으로 서민과 함께 하는 대중음악을 시도했던 그는 계속 귀족들과 마찰/대립을 이어 가죠.
한편 살리에리는 기존 음악과 문화에 오차 없이 블렌딩되어 들어갑니다, 늦게 시작한 음악 인생이지만 요한 2세 황제의 스타일에도 맞아서 궁중음악가도로 명성을 이어 갑니다.
당대 최고 수준의 인기와 주목받았던 음악 교사였던 살리에리... 황제에게 근래 최고의 오페라라는 칭송도 얻은 그의 작품은 고전음악의 틀에 벗어남이 없는 음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모차르트의 작품에는 이와는 반대로 변화와 혁신을 내포하는 문화 코드도 있으니만큼 그 시대에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점도 있었을 것으로 생각 합니다.
1781년 잘쯔부르크를 떠나는 모차르트의 모습이 초반에 보입니다 - '하인' 이라며 충성을 요구했던 잘쯔부르크 대주교를 향해 모차르트는 엉덩이 인사를 하는데, 이는 앞으로의 대격변을 예고하는 것 같이도 다가 옵니다.
모차르트 뒷모습으로 귀족이 있는 방의 문이 굳게 닫히는 중에 청중들은 열광을 하죠. 이 장면이 앞으로의 음악이 귀족의 어떤 소유물을 떠나 대중들에게로 옮겨 갈 것을 가리키는 것 같아 의미심장한 느낌을 받았는데요..
물론 모차르트의 10년이 평탄하진 않았습니다 - 후원자 시스템을 벗어나 자유 영혼을 부르짖는 자유 예술가로서 그는 작품을 써나가면서 궁지에 몰리게 되는데요, 개인적인 문제(도박, 술, 낭비벽 등)를 차치 하고서라도 당시 시대 상황상 무모한 것임에는 틀림 없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음악가와 예술가가 속한 중산층 시민계급은 투쟁으로 신분이 더 올라가게 되며, 정치 권력도 붙잡게 되긴 하지만 그런 제도, 시스템이 만들어지기 전에 모차르트는 생을 마감 합니다.
일부는 모차르트의 이와같은 모습이 너무 갑작스럽고 때를 잘 못 만나서 일찍 시들었다라고 평하기도 합니다만 오히려 모차르트의 저같은 파과자 같은 모습이 베토벤 등 다음 세대의 여러 음악가들에게 영감과 음악 외 시스템 적인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한 점도 있지 않을까 생각 합니다.
질투와 욕망에 가려진 아마데우스 안의 정치색 2015.12.14
[출처 : 내츄럴사운드 http://naturalsound.co.kr/ written by creasy 2015]
2015년 내추럴사운드에 투고된 글입니다, 블로그를 업데이트하면서 같이 포스팅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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