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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앵그리 애니, 현실과 제도의 괴리 & 선택
    Review/미디어 2023. 10. 31.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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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 타임'을 통해 알게 된 배우 로르 칼라미 주연의 '앵그리 애니'를 시사회를 통해 먼저 만나봤어요. :)

     


    프랑스는 1975년, 거의 50년 전 여성이 원하면 임신 중절을 할 수 있는 법을 제도화했습니다 - 정확하게는 12주까지는 사유 불문하고 임신 중절을 허용한다는 내용인데 (지금은 이를 14주로 늘리는 법안이 하원에서 통과되었다고 합니다), 이 법이 제도화되기 1년 전 시점에서 영화가 시작합니다 (실화 기반 드라마입니다, 물론 등장 인물들은 창작이구요).

     

     

     

    - 종교, 사회 그리고 임신

     

     

    카톨릭 전통에 따라 여느 유럽 국가들처럼 프랑스는 피임도, 낙태도 모두 불법이었다고 하죠 - 페미니즘의 영향과 여성의 사회 활동이 늘고 인식이 바뀌어가면서 (인권과 여성 평등 등) 임실 중절을 허용해달라는 요구가 늘어가며 시위를 포함, 1973년엔 MLAC(Mouvement pour la liberté de l'avortement et de la contraception, 임신중지와 피임의 자유를 위한 운동) 조직을 구성해 결국엔 1975년 임신 중절이 허용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아이를 가질 수 있는 건 여성의 특권이라고도 하지만 원하지 않는 임신이나 육아로 고통 받는 사람들도 상당 수 되죠, 개인적인 영역이기도 한 이런 부분을 법리나 종교 교리를 내세워 획일적으로 개인 상황과 자기결정권 같은 권리를 무시한 채 강압적으로 처리하는 것도 문제라고 할 수 있겠구요. 물론 예전에도 임신이 산모의 건강을 위협하거나 할때 제한적으로 (의학적으로/사회관념으로) 낙태가 허용되긴 했지만.. 그 외엔 무조건 하늘의 뜻이며 낳아 길러야 하는 상황이었죠.

     

     

    사회가 고도화되고 의식도 발전하고 양육과 직업의 영역이 남녀 구분없이 넓어지면서 양육 의무를 어느 한쪽만 지울 수는 없게 되었을 무렵, 무조건 적인 낙태 금지는 여성 인권과 자기 몸에 대한 권리를 박탈한다는 페미니즘에 기반한 운동이 확산하면서, 그리고 기술 발달로 기존 낙태 방법보다는 안전한 시술 등이 마련되면서 낙태 허용과 피임의 요구는 강경 페미니즘 운동과 더불어 거세어져 갔습니다, 그 노력끝에 지금에 이르렀구요.

     

    이 영화는 법 제도나 시위, 페미니즘 등 정치적인 면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오직 사람에, 임신 중절이 필요한 사람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 그에 따른 여성의 인권, 권리, 아픔을 그리고 공유하고 있어요.

     

     

     

    - 섹스를 즐기는 여성은 걸레?

     

    영화를 보다가 내심 안타까웠던 점 하나가 있었어요 - 서양이나 동양이나 소위 즐기는 여성을 두고 걸레라던지 창녀라던지 모욕적인 말을 내뱉는 풍조는 비슷하구나.. 즐긴 건 남자가 아니라 여자 뿐이었을까? 걸레라며 욕한 여성처럼 별반 다를 거 없이 문란한 성생활을 즐기고, 임신에서도 자유롭고, 나쁘게 마음 먹으면 자기 씨에 대한 책임도 버릴 수 있는 그런 남자는 어떤가 하는 부조리가 떠올랐달까요?

     

    쾌락만을 추구한 섹스의 말로로 원치않는 임신을 하게 되니 그제서야 그 새생명을 자신의 이기심으로 죽인다, 그건 살인이다라는 주장... 영화는 그런 점은 살짝 비껴가면서 더 문제가 된 현실적인 어려움에 초점을 맞춥니다 - 이미 아이가 넷인데 피임 금지로 인해 다섯째 아이를 가지게 된 40대 여성, 남자가 임신시켜 놓고 중간에 연락 끊고 사라져버려 어쩔 줄 몰라하던, 심지어 임신 사실도 너무나 늦게서야 알게된 17살 짜리 여자아이..

     

    그 외에도 이미 아이가 많아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워 불법 시술을 받다 죽어나간 많은 여성들의 마음과 현실적 고뇌가 영화 속을 꽉 채웁니다. 임신중절 자체가 불법이니 안전하니 이런 점들을 떠나 어떤 시술이던 다 불법으로 처리되던 때 이야기, 만약 저때 저라면 과연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보면서 묵직 답답했어요.

     

     

    여성의 몸은 개인 권리이기도 하지만 사회적으로도 어느정도 범주가 포함되어버려 (인구 제어, 사회 관념, 윤리도덕 관념, 종교사상 등) 하나같이 섣불리 답을 내기 어렵고 안타까운 상황을 아주 리얼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 남녀 이분법이 중요한게 아니라 같이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에 더 시선을 맞추려 한 노력이 엿보였어요.

     

    지금에서는 MLAC 운동과 과격한 페미니즘 영향으로 관련 법안이 통과된 것처럼 미디어 등에선 설명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페미니즘의 승리네, 정치적으로 굴복했네, 이런 점 보단 정말 필요한 사람들이 있고, 발전하는 사회가 되기 위해선 기초적인 안전장치/제도도 마련해야 하니 시간과 의식 발전의 수순이 아니었나 생각이 들었어요, 더불어 기술(의학) 발달도 있겠구요.

     

     

     

    - 임신 중절과 피임의 자유

     

     

    영화는 무분별한 낙태 시술에 동의하거나 부추키거나 하지않고, 여성의 개개인의 권리와 안전에 대해 더 크게 조명하고 있습니다 - 과격한 페미니즘이나 (당시는 래디컬 페미니즘 운동이 한창이던 시절이기도 했어요) 생명 윤리에 대한 논쟁보다는, 현실에 부딛혀 고통받고 있는 여성과 남성, 대안을 찾아 고민하고 (때로는 부딪히는) 돕고자 애쓰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룹니다.

     

    법 제도가 어떻게 사람을 살리고 죽이는지, 어떻게 힘든 가정을 살필 수 있는지, 사회 부담을 줄이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지도 같이 살펴볼 수 있는, 개인적으로는 꽤 의미있는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영화라고 느껴졌어요. 과연 원치않는 출산으로 새로 태어난 생명이 환영받지 못하는 그런 상황이라면 그게 가족에게나, 사회에 바람직한 것일지...

     

    우리나라는 2019년 낙태죄가 형사상 범죄로 취급되는게 위헌이라고 판결 내리고 이어 법률 개정을 해야 했지만, 지지부진한 상황에 2021년에 낙태가 비범죄화 되었습니다. 아직 그 범위와 장소, 그리고 어떻게에 대한 부분은 불분명해 프랑스처럼 '12주 미만 임신중절' 이같이 딱 정해지진 않았는데 최소한 낙태가 불법은 아닌 상황입니다.

     

     

     

    이번 작품에서 주인공 애니역을 맡은 로르 칼라미. 이번 작품에도 워킹 맘으로 등장하는데 이전 작품에서 본 모습과는 또 달라서 보는 내내 안타까웠고, 응원하고 싶었어요. 이 영화 말고 아나마리아 바토로메이 주연의 프랑스 영화 '레벤느망'이라는 영화도 있는데 결은 다르지만 여성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부분은 또 겹쳐 보이는 부분이 있어서 이 영화와 더불어 추천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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