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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엑슨 발데즈가 알래스카에 남긴 상흔, 멕시코만의 미래는?
    사회 & 환경/공유하는 환경 2010. 11. 9.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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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 :  Alaska's present, after 1989 Exxon Valdez oil spill, might be Gulf Coast's future


    1989년 엑슨 발데즈 기름 유출 사고 이후 알래스카의 현재... 멕시코만의 미래의 모습이 될 지도 모릅니다.


    가슴 아픈 기사... 자연과 더불어 살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 '자본'을 가진 자들에 의해 어떻게 유린되었는지 확연히 보여주는 적나라한 내용... 이 아픔을 같이 하고 싶어서 번역해서 다듬어 포스팅 합니다. :)


    - 알래스카 코르도바

    이슬비가 내린 추운 어느 날 오후, 알래스카의 코르도바에 거주하는 어부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중요한 발표가 있는 날이었군요 - 곧이어 알래스카 주정부 어류 및 수렵국 (ADF&G)의 공무원이 나와 안내문을 게시판에 붙이며 새 소식을 전하기 시작합니다. 발표한 내용은 매우 좋은 것이어서 올해 홍 송어가 많이 잡힐 것으로 예상돼 12시간 동안 충분히 포획할 수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곧 이어 눈에 쌓인 산을 뒤로 하고 Copper 강을 향해 배들이 줄지어 출항하기 시작합니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 코르도바 항구는 거의 비었습니다. 저녁 때가 되자 소프트볼 게임이 시작되었습니다. 남자아이들은 파울 볼을 쫓아 다니느라 여기저기 무리 지어 다니고 있는데, 어른들은 계속 강에서 고기를 잡고 있었기에 많이 눈에 띄지 않습니다.

    2,200여 중심 구에 모여 사는 많은 사람들은 수 세대를 이어가며 어업을 주요 생계 수단으로 하고 있습니다. 배에서 수 일, 또는 수 주간 보내며 항구에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뱃사람들과 함께 영원한 낮이 계속되는 알래스카 여름 특성 덕분에 이렇게 연어나 송어가 잡히는 철이 되면 코르도바는 독특한 자체 리듬을 타고 돌아가기 시작 합니다. 가족이 100년 역사를 가진 호텔을 운영하거나 약국이나 책방을 소유하며 운영하는 모습의 중심 번화가는 마치 MayBerry의 먼 북쪽 모습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그러나 누구든 이 곳에서 Exxon(엑슨) 이라는 말을 꺼내면, 일순간 이 모든 전원적인 풍경은 사라집니다. 어떤 이는 1989년 당시 정박 중이던 Exxon Valdez 라는 탱커에서 약 1천 1백만 갤런의 (3.785 x 11,000,000 = 약 41,635,000 리터) 정제되지 않는 순 석유가 알래스카 만의 남쪽에 위치하는 Prince William Sound 해역에 퍼부어졌을 때 무엇을 잃었는지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21년이 지난 지금 여름을 알리던 청어떼는 대부분 사라지고 없습니다 - $300,000 어치의 허용량이 무용지물이 된 셈입니다. 이런 손실은 비단 금전문제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 이혼, 자살, 저당 잡힌 배, 사라진 대학 등록금, 다른 곳으로 이사가 연락이 끊긴 친구들... 2년 전 미연방대법원이 엑슨에 대한 25억 달러의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액을 5억 달러로 삭감했을 때의 냉소와 분노는 영원히 이들에게 앙금으로 남아 있습니다.

    코르도바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TV를 켜면 여전히 십수년 전 경험했던 그 괴악한 경험이 되살아나듯 재현되곤 합니다. 기름흡수 띠를 두르고 다니는 배하며, 검은 기름에 부리부터 꼬리까지 뒤덮인 새들, 고등학교 체육실에 모여 정유회사가 모든 어부들에게 피해 보상을 약속하던 회의 장면.. 이 모든 것들이 그들에겐 일상처럼 다가오곤 합니다.


    - 몇 주 만에 발데즈의 양을 넘어선 BP 사태

    엑슨 발데스 사건은 오랜 기간 동안 미국 역사상 최악의 기름 유출 사고로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나 BP의 딥 워터 호라이즌 사태는 단지 몇 주 만에 (아니, 불과 며칠 만 일지도 모릅니다) 이 기록을 갈아치웠습니다. 지난 2010년 4월 20일에 있었던 심해 석유 굴착장치 폭발 사고는 (이때 폭발로 당시 11명의 기술자가 즉사했습니다) 적어도 3척, 아마도 15척의 엑슨 발데스호가 멕시코 만에 쏟아 부은 양과 맞먹으며, 앞으로 한달 이상 더 쏟아 낼 가능성이 있습니다.



    수천킬로 남쪽을 향하여 퍼져나간 환경 재앙은 배 아니면 비행기를 통해서만 접근 가능한 외딴 코르도바의 관심을 바꾸기에 충분했습니다. 이런 과거의 아픔에도 불구하고 코르도바의 사람들은 방문객들과 그들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 대해 부담을 가지지 않습니다. 해안가에서 일하는 자원 봉사자들은 “BP를 믿지 말라”는 조언을 빼놓지 않습니다.

    “그 석유 회사가 말하는 어떤 것이든 믿지 마세요. 그쪽엔 추가 손해를 줄이는 일을 하는 큰 PR 부서가 있을 겁니다” 코르도바의 한 어부 Mike Lytle씨가 말합니다. “우리가 그런 정유 회사와 경험했던 것 보단 낫길 바랍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알래스카나 루이지아나는 그리 다를 게 없습니다. 알래스카에선 연어와 넙치가 많이 나며, 새우와 굴 산업은 없습니다. 생선 필릿은 소금과 후추, 아니면 테리야키 소스를 뿌려 먹으며 케이준 스타일의 향신료를 쓰지 않습니다. 여름 기온이 섭씨 약 16도 이상으론 거의 오르지 않고, 하루 종일 깜깜한 밤이 펼쳐지는 추운 겨울이 계속되는 이 곳.

    어업과 거대 석유 산업. 아니면 땅 파는 작업이 잘못되면 크게 어긋나고 마는 오염되기 쉬운 지역. 두 州 모두 같이 같은 물가에서 대대로 가업으로 이어 온 어업이 있고, 젊은 이들도 같이 다른 삶의 방식을 상상할 수 없는 공통점이 존재 합니다. 21년 후 엑슨 발데즈 측 생존자는 카산드라 해운 종사자 같은 사람들 이며, 이들은 비록 전혀 만난 적이 없지만, 만 연안에 사는 사람들이 이후 길고 험한 여정을 거치게 될 것을 잘 알고 있었고, 그 이후의 역경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많은 삶에 영향을 줄 것입니다. 절대 예전과 같지 않겠지요. 풀어가려면 앞으로도 수 년이 더 걸릴 겁니다.” 거의 30여 년 동안 지역에서 어업을 해온 Bruce Robertson씨가 말합니다. “좋은 가정들이 찢어지고, 사업들도 망했죠. 전혀 좋은 꼴이 아니죠.”



    - 21년이 지난 지금도 표면 아래에 남아있는 기름

    엘리뇨 섬은 Prince William Sound 주변에 흩어져 있는 섬 중 하나로 사람이 사는 곳은 아닙니다. 그 암석 투성이 해변은 자주색불가사리와 작은 홍합의 서식지입니다.



    삼림지에 접근하면 암벽은 작아 지기 시작 합니다. 자갈밭 같은 표면을 한 삽 가득 몇 번 떠 보다 보면.. 바로 기름을 볼 수 있습니다 - 천연 기름이 아니라 엑슨 발데즈 때 유출된 석유, 21년 동안 묻혀있던 그 기름을 보는 거지요. 방금 판 구멍 위로 무지개 광택이 도는 것도 볼 수 있습니다. 암갈색의 덩어리가 표면에 떠있고, 정유소에서나 맡아 볼 법한 냄새가 납니다.



    1989년 3월 24일 선장이 술에 취해 갑판 아래 있었다고 주장한 무면허 보조수가 조타를 맡았던 엑슨 발데즈호가 Bligh Reef에 부딪혔습니다. 처음엔 기름이 탱커에서 많이 유출되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나 그걸 다시 수용하기 위한 노력은 적었습니다. 3일째 되던 날, 강력한 태풍이 만에 불어 닥치면서 기름을 11,000 평방 마일 (약 18,000 km^2) 에 걸쳐 남서쪽으로 흩뿌려 놓았습니다, 코르도바는 직격타를 맞았고 그 마을의 이후 모습은 이전과는 아주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악몽 같은 계절이 몇 번 지난 후 Prince William Sound에 연어가 다시 출몰하기 시작 했습니다 - 부화장에서 알을 채집, 부화한 후 아직 어린 녀석들을 야생에 풀어 준 덕분이랄까요. 해달은 여전히 '회복 중'인 상태 입니다; 조개를 찾기 위해 기름에 오염된 표면을 오랜 시간 동안 표류하는 이와 같은 종들은 여전히 (개체수가) 다시 회복하는데 속도가 느립니다. 한 범고래 무리는 잘 적응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 이 무리는 한때 40%의 개체를 잃었었는데, 다른 지역에 있는 무리는 멸종되어 가는 것으로 보입니다.

    가장 큰 손실은 한때 투명한 노란 알 덕분에 일본에도 수출되곤 했던 청어 입니다. 고래, 강치, 바닷새 등이 모두 먹고도 충분한 양의 청어가 존재한 걸로 파악되었으나, 현재 그 수는 수익을 위해 낚아 올리기엔 턱없이 부족한 양 만이 남았습니다 - 한때 이 지역의 경기를 책임지곤 했던 주산물이었지요. Prince William Sound 에서 다른 생계 수단으로 활동한 사람들도 바다와 관련 있었다면 모두 영향을 받아 과거의 코르도바 생활과는 거리가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그거야 말로 우리 생계 수단의 큰 파이를 차지하던 것이었죠" 코르도바 지부 어업연합회 회장인 Rochelle van den Broek씨가 입을 엽니다. "모든 게 확실히 많이 느려졌어요, 지금은 모두가 여기서 같이 살 수가 없습니다, 겨울엔 이 마을의 절반을 사용할 수 없게 되구요. 학교에도 아이들이 별로 없습니다. 전부 같이 영향을 받고 있는 거지요.."

    엘리뇨 섬의 기름 축적은 루이지아나의 굴 채집부나 펜사콜라에서 선탠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현재 타르 덩어리에 오염된 이 바다가 '20년 후엔 만족스러울 정도로 바뀌어 있을 거다'라고 하는 희망찬 메시지를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다. 기름은 얼음물인 알래스카 바다보다 따뜻한 물에선 더 잘 풀어집니다, 늪으로 둘러 쌓인 환경은 돌만 있는 바다 보다는 정화 작용이 더 활발할 것이고요. 실제 엑슨 발데즈 때 보다 BP가 저질러 놓은 기름은 더 연안가로 빨리 들어 왔습니다.



    문제는 현재 해저에서부터 뿜어 나온 양이 이미 알래스카 때의 양을 넘어선 것으로 예상되고, 더 계속 나오고 있다는 것이 문제겠지요. 또 다른 변수는 기름 분산제 사용 부분 입니다. 엑슨 발데즈 때엔 잠깐 사용되었는데, 이번 멕시코 만에선 많이 사용되었기 때문에 그 독성으로 인한 장기간 동안의 영향이 걱정이 됩니다.

    "한가지 희망적인 것은 기름이 오랜 시간 동안 있진 않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하지만, 피해는 매우 크지요." 코르도바의 Prince William Sound 과학센터의 책임자 Nancy Bird씨가 말했습니다.


    - 세상이 뒤집힌 날



    이른 1989년, Linden O'Toole씨와 그녀의 남편 Kevin씨는 연어 예인망 어업 허가서를 사고자 했습니다. 어업은 수입이 매우 좋았습니다, 이 코르도바 커플은 그물로 둥글게 원을 만들어 낚아 올리는 예인망 어업이라는 방법으로 연어를 어획할 수 있는 권리를 300,000 달러에 낙찰 받았습니다.

    그들이 허가권을 매입한건 기름 유출이 있기 수개월 전의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90년은 Prince William Sound 에서 이 방법으로 연어를 어획한 최고의 해로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나 기름이 산란지를 덮치자 그 영향은 수 년 이후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 1989년부터 태어났던 새끼 연어들을 잡아 올릴 때 즈음이었지요. 수확량은 1991년 6천8백만 파운드(약 3천1백만 kg) 에서 92년엔 약 1천7백만 파운드로, 이듬 해엔 단지 9백5십만으로 약 86%가 줄었습니다. 어업 허가서의 가치는 이보다도 더 심하게 떨어졌습니다, 주 정부의 데이터에 따르면 2003년 13,500 달러 선 까지 내려앉았습니다.



    결국 O'Tooles 부부는 그들의 허가서를 47,000 달러에 내 놓지만, 여전히 원래의 300,000 달러 빚은 이들을 따라 다녔습니다. 이를 처리하기 위해 결국엔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부동산 재산을 처분해 갚았습니다. 케빈씨는 갑판원으로서 다시 일하기 시작했고, 작년에서야 비록 오래된 배 한 척이지만 예인망 사업을 차려 다시 어업에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때 미래는 그냥 밝아 보이기만 했지요. 그 석유가 넘쳐 흘러나온 순간 모든게 바뀌었습니다, 우리에겐 세상이 거꾸로 뒤집히는 순간이었음은 말 할 필요도 없습니다." Linden O'Toole씨가 말했습니다.

    많은 지역 어부들도 기름 제거 작업에 힘을 보탰고, 몇몇은 이를 통해 금전적인 이익을 얻기도 했습니다, "spillionaire : spill + (mill)ionaire" 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킨 순간이지요. 비운의 유조선이 정박했던 발데즈 항만은 어업으로 북적인게 아닌 기름으로 넘쳐났고, 구직자들은 이곳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 호텔들은 성업하기 시작했고, 텐트 야영지도 급격하게 증가했습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바라봤을 때 코르도바에서 그 해 여름에 올린 이 같은 수익으로는 그들이 그 이후 겪게 된 피해를 모두 커버할 수 없었습니다. 몇몇은 대담하게 새 어선에 투자하거나 허가서를 사기도 했지만 이미 어업은 무너져가고 있었습니다. 몇몇은 어업을 떠나 그 마을에서건 다른 곳으로 이사 가서나 해서 새 삶을 시작하기도 헸습니다, 어업에 의존하던 사람들은 힘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저 사람들을 보면 참 마음이 아파요. 저기 일 하는 사람들을 보면 자기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어요. 저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건 삶의 방식을 바꾸고 자신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 밖에 없어요. 미술 학원에 진학하고 싶다면, 망설이지 말고 하는 거죠. " 전에 어업을 하던 여성으로 지금은 그리 맘에 들어 하지는 않는 어부 여인숙을 꾸려가고 있는 Sylvia Lange 씨가 말합니다.

    John Platt씨는 1990년 연어 어획 권리를 300,000 달러에 샀습니다. 91과 92년에 걸쳐 연어를 거둬들였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 상업적으로 허가된 어획 기간은 단 한차례뿐이었으며, 98년 이후엔 아예 없어졌습니다. 이 연어 어획 허가서의 시장 가치는 현재 약 1만 달러 가량 합니다.

    John Platt씨가 엑슨에게서 받은 보상금은 - '실 손해액에 비하면 아주 작은 금액' 이라고 말합니다만 - 이제 가치가 없어진 어획 권리를 갚는데 전부 사용했습니다.

    "아직도 힘들어요, 아들이 셋인데 내년에 칼리지에 진학해야 하는데도 제가 도울 방법이 없어요," 여전히 연어 잡이를 하고 있는 Platt씨가 말을 이어 갑니다. "건강보험도 끊겨있는지도 얼마나 되는지 기억도 안나요.."

    Platt씨의 이복형제 Douglas Pettit씨는 기름 유출이 있고 난 다음 해에 400,000 달러를 연어잡이 배와 허가서에 투자했습니다. 최근 들어 어업은 다시 활성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건 지금 이야기이고 당시 Pettit씨는 빛 더미에 빠져 살아야 했고 채권자들에게 쫓겨 다니는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결국 큰 손해를 메우기 위해 배를 포기하고 최근에 허가서도 팔았다고 합니다.

    난방사업과 배관사업을 통한 수입에도 불구하고 Pettit씨는 나머지 배들과 집도 잃는 게 아닌지 걱정 속에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 가능성을 생각하게 되니 그는 갑자기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울기 시작 합니다.

    그는 다른 형제인 Daniel Pettit씨는 어업에서 실패하자 알코올중독에 빠져 이내 2005년에 사망했다고 말했습니다.


    "당신은 그 변화를 상상할 수 없을 겁니다. 이 마을에서 생명을 그냥 송두리째 빨아들였습니다, 우리들의 생계수단, 우리들의 삶의 방식.. 그건 정말 견디기 힘든 겁니다."

    South Alabama 대학교 사회학자인 Steven Picou씨는 엑슨 발데즈 사태 이후 코르도바에서의 높은 우울증과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 그 외 기타 심적 건강상태 이슈에 대해 공문화했습니다. 피해자는 자연재해 때보다 기름 유출과 같은 '기술로 인한 재앙'때 더 큰 고통을 받는다고 합니다, 이유는 그런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 또는 회사에 대한 반감, 또 그에 따른 영향이 긴 시간 동안 계속 커져가기 때문이라고 Picou씨는 기술하고 있습니다. 장기간의 지치는 소송도 심리적인 스트레스를 가중하고 있습니다.

    Picou씨는 카트리나 허리케인 때의 생존자들도 연구했습니다. 태풍이 오고 나서 5년이 지나서야 다시 제 모습을 찾아가기 시작했는데, 재앙 같은 기름 유출 사태가 멕시코만을 덮쳤습니다.

    "그들은 상처받기 매우 쉽습니다, 이 점이 현재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더욱 힘들게 만들고 있습니다. 언제 끝날까요?" Picou씨가 말합니다.
     
    "카트리나가 언제 지나갔는지 우린 알아요, 도시에서 물을 다 빼냈다는 것도 알아요, 다시 돌아가서 우리들의 집도 다시 짓고 또다시 이런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하고 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아요. 여기에서 문제는 이겁니다 - 그런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적다는 거에요. 그들은 어떻게 할 수도 없다고 생각하고 있고, 가슴속엔 분노로 차 있습니다. 마치 이 사회에서 삶의 의미, 삶의 뜻을 통째로 빼내간 것 같은 거에요."


    - 감정은 이 어촌에 고스란히 남아있어...

    옛날 알래스카 사람들은 고위층에 있으면서 할 일을 안 하는 사람을 제대로 일 하게 만들기 위해서 그 사람들을 '망신살이 기둥'에 이름을 올리곤 했습니다.



    그런 토템 기둥이 토착 알래스카의 인공 유물을 주로 다루는 코르도바의 일랑카 문화 센터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예술가 이자 이 지역에서 어업을 하는 Mike Webber씨는 엑슨의(현재는 엑슨모빌이죠) 전 CEO인 Lee Raymond씨를 거꾸로 매달고 입에서 검은 기름을 뱉어내며 "완벽하게 만들어 드립니다" 는 글귀가 적혀있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레이몬드를 BP의 Tony Hayward(토니 헤이워드)씨로 바꾸고, 해달을 펠리칸으로 바꾸면 많은 루이지아나 사람들에겐 현재 자신들이 처한 상황과 똑 같은 상황이라는 걸 알 수 있을 겁니다.

    엑슨에 대한 분노는 - 처음엔 이 재앙을 만든 것 때문에, 그리고 다음은 보상 청구에 있어서 힘든 싸움을 하게 만든데에 대한 - 코르도바에 여전히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미연방대법원이 하급법원이 올린 손해배상 청구금액을 크게 줄이면서 반감을 더 크게 키운 계기가 되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에 의한 BP에의 200억 달러의 조건부 날인 증서 계좌 개설은 법정 싸움 시 이와 유사한 경우의 재발을 방지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코르도바에 있는 사람들은 피해자들에게 BP나 정부에 기대하지 말라고 충고 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엑슨에게서 큰 액수의 보상금을 받을 것으로 예상했었습니다. 18년 후에 수표를 주더군요, 그리고 그건 예상한 것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었습니다. 이혼이라던가, 여러 가지가 있었지요. 마을은 그냥 혼란 상태였는데도 지금은 그래도 다시 회복하고 있는 중이에요." 37년 동안 어업에 종사해온 Don Bailey씨가 말합니다.


    - 삶의 방식

    이런 고통 속에서도 코르도바는 여전히 어촌으로 남아 있습니다. 젊은이들에겐 종종 고정적으로 월급이 나오는 직업을 가질 것을 권하나, 많은 젊은이들이 부모의 뒤를 이을 것을 결심합니다.

    John Platt씨의 세 아들은 모두 어업에 종사하길 바라고 있습니다. John Platt씨도 동의하고 있습니다만, 한가지 조건은 있습니다: 일단 대학/칼리지는 마칠 것 - 현 생태계가 무너지거나 설마 또 다른 기름 사태가 난다던가 하는 재앙에 대한 대비책으로서 말이지요. 장남 Christopher씨는 이번 여름부터 바다에 나가기로 했습니다, 비수기 때엔 고등학교에서 교사로서 일 할거라는군요.

    Platt씨 처럼 James Burton씨의 아버지 또한 20여 년간 쓸모 없어진 청어 허용에 따른 빛을 값아가면서 어업에 종사하면서 아들에게 어부 말고 다른 직업을 가질 것을 당부하곤 하셨습니다. 젊은 혈기의 버튼씨는 주의 경찰관으로서 몇 년 근무했으나, 책상에 앉아 리포트 쓰고 하는 것이 싫은 나머지 다시 바다로 나갔습니다.



    청어는 사라졌지만 이 만에선 최근 기름 유출 이래 첫 새우잡이가 시작하기도 했습니다, 차위차연어, chum, 은송어, 곱사숭어, 홍연어 등의 풍부한 연어 종은 여전히 코르도바의 생계를 유지시키는 주요 어종 입니다. 2008년의 예인망 어업을 통한 연어 수확은 최고조에 이르렀으며, 5천2백만 달러의 수익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2009년은 이에 비해선 다소 안 좋았지만요.

    30세가 된 버튼씨가 말합니다. "전 지금껏 이런 방식으로 살아왔습니다, 이걸 떠나 살긴 좀 어렵네요"



    Written by Cindy Chang 2010.07, Nola.com / Translated by creasy 20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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